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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慶宮洪氏의 父親이자 思悼世子의 丈人인 翼翼齋 洪鳳漢이 1730年부터 1775年까지 通引 役割을 하였던 吳山岳에게 보낸 簡札을 묶은, 孫子 洪守榮의 跋文이 붙어 있는 [簡札帖] 1點

혜경궁홍씨의 부친이자 사도세자의 장인인 익익재 홍봉한이 1730년부터 1775년까지 통인 역할을 하였던 오산악에게 보낸 간찰을 묶은, 손자 홍수영의 발문이 붙어 있는 [간찰첩]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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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번호

7 (170582J1TDY)

경매일자 2017.06.2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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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의 부친이고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장인(丈人)이며 정조(正祖)의 외조부(外祖父)인 익익재(翼翼齋) 홍봉한(洪鳳漢; 1713 ~ 1778) 선생이 1730년부터 1775년까지 통인(通引) 역할을 하였던 오산악(吳山岳)에게 보낸 간찰 19매를 엮은, () 말미에 1790226일에 오재성(吳載成; 吳山岳)이 그의 아들 오영우(吳永祐)를 시켜서 글을 써주기를 청()하매 익익재(翼翼齋)의 손자(孫子) 홍수영(洪守榮)이 써준 발문(跋文)181721일에 오재성(吳載成)의 아들 오영록(吳永綠)의 부탁으로 익익재(翼翼齋)의 증손자(曾孫子) 홍세주(洪世周)가 친히 써서 준 발문(跋文)이 순서대로 붙어 있는 [간찰첩(簡札帖)] 1점이다.

 

 

홍봉한(洪鳳漢) 선생의 가계(家系)는 다음과 같다.

   홍만용(洪萬容; 1631 ~ 1692) - 홍봉한(洪鳳漢; 1713 ~ 1778) - 홍락인(洪樂仁; 1729 ~ 1777) - 홍수영(洪守榮; ? ~ 1798) - 홍세주(洪世周; 1791 ~ ?)

 

통인(通引) 오산악(吳山岳)의 가계(家系)는 다음과 같다.

   오산악(吳山岳; 本人) - 오재성(吳載成; ) - 오영우(吳永祐)오영록(吳永綠; )

 

발신지(發信地)의 주소는 당시에 홍봉한(洪鳳漢) 선생이 거주하였던 안국동(安國洞)”으로 씌어져 있는 간찰이 대부분이다

   봉피 겉면에 안국동(安國洞)”이라고 새겨진 도장(圖章)이 날인되어 있다.

 

 

손자(孫子) 홍수영(洪守榮)이 써준 발문(跋文)의 내용에 따르면, 오산악(吳山岳)은 홍수영(洪守榮) 자신의 왕고(王考)인 홍봉한(洪鳳漢) 선생의 통인(通引) 역할을 하였다고 하였다. 홍수영(洪守榮) 자신이 1789[己酉]년에 성주목사(星州牧使)로서 고을에 부임하였을 때, 오산악(吳山岳)의 아들 오재성(吳載成)이 찾아와서 긴 첩자(帖子) 1()의 형태로 된 간찰첩(簡札帖)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왕고(王考) 홍봉한(洪鳳漢) 선생의 친필(親筆)이었는데, 홍수영(洪守榮) 자신이 두 손을 받들어 경람(敬覽)하였다고 하였다. 오재성(吳載成)과 지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뒤에 오재성(吳載成)은 곧 돌아갔다고 하였다. 후일 오재성(吳載成)이 그의 아들 오영우(吳永祐)를 시켜서 첩자(帖子)에 실을 발문(跋文)과 첩자(帖子)의 표제(標題)를 써주기를 부탁하였으매, 그 전말(顚末)을 권하(卷下)에 상세히 기록해둔다고 하였다.

 

증손자(曾孫子) 홍세주(洪世周)가 친히 써서 준 발문(跋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씌어져 있다. 자신의 집안이 융성(隆盛)했을 때에는 삼천(三千)의 도이(桃李)와 수백 개의 진주(珍珠)와 같은 인물들이 문을 밟고 들어와서 당()에 가득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태(世態)와 애락(哀樂)이 홀연히 뒤바뀌는 상황에 미쳐서는, ()과 당()에 가득했던 자들의 거개(擧皆)가 비바람에 흩어져 버렸다고 하였다. 오직 영외(嶺外)의 사람만이 그 마음을 변치 않고 지켰다고 하였다.

 

간찰 가운데에는 1771[辛卯]년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외방(外房)에서 얻은 아들 은언군(恩彦君은신군(恩信君) 이복형제(異腹兄弟)가 귀양(歸養)을 가게 되었을 때 이들이 타고 갈 초헌(軺軒)을 마련해 준 일이 죄()가 되어 청주(淸州)에 부처(付處)되었을 당시, 홍봉한(洪鳳漢) 선생이 청주(淸州) 유배지에서 작성한 간찰이 있다. 그리고 봉조하(奉朝賀)를 제수(除授)받은 뒤인 1775년에 쓴 간찰이 수록되어 있다.

그 밖에 본관(本官)의 사안(賜顔)은 행여 많이 미치지 않게 하라는 내용이 담긴 간찰과 공목(貢木)을 마땅히 분부하여 봉상(捧上)케 해야 할 것이라는 뜻을 담아 쓴 간찰 등이 실려 있다.

 

홍봉한(洪鳳漢) 선생이 판서(判書)영부사(領府事)영의정(領議政)봉조하(奉朝賀) 등 조정(朝廷) 중요 관직(官職)을 맡고 있었을 때 작성을 했던 간찰의 모음집이라고 하겠다.

 

 

 

봉피 18매가 함께 붙어 있다.

간찰첩(簡札帖)을 보관하는 포갑(包匣)이 함께 구비되어 있다.

작품의 보존된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세로 44.8 cm, 가로 26.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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