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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年 2月에 英祖가 右承旨 李彝章으로 하여금 當時 書筵官이었던 宋明欽에게 傳하도록 한 備忘記〈別諭〉1點과 恩津人 完彬이 1950年에 刊行한 〈恩津宋氏世系〉1點 等 [古文書] 2點

1756년 2월에 영조가 우승지 이이장으로 하여금 당시 서연관이었던 송명흠에게 전하도록 한 비망기〈별유〉1점과 은진인 완빈이 1950년에 간행한 〈은진송씨세계〉1점 등 [고문서]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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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번호

251 (1705CFU4XIO)

경매일자 2017.06.2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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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문서의 특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별유(別諭)〉문서: 1756년 2월 초2일에 영조(英祖) 임금이 우승지(右承旨) 이이장(李彝章)으로 하여금 당시 서연관(書筵官)이었던 송명흠(宋明欽; 1705 ~ 1768)에게 전(傳)하도록 한 비망기(備忘記)로서, ‘서연(書筵)에 나와 영조(英祖) 자신의 몽매(夢寐)함을 깨우치게 해 달라’며 내린 [별유(別諭)] 1점이다.

[별유(別諭)]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지금 초선(抄選)된 사람들은 모두가 세록(世祿)을 받아온 신하들이니, 어찌 나를 매진(邁進)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영조(英祖) 자신의 불민(不敏)함으로써 서연(書筵)에 임하여 강독(講讀)을 할 때마다, 걸핏하면 몽매(蒙昧)해지는 상태(狀態)를 근심으로 여겼다고 하였다. 만일 구원(丘園)에서 독서(讀書)를 하고 산림(山林)에서 덕(德)을 기른 선비가 좌우에서 깨우쳐주고 조석(朝夕)으로 보도(輔導)해주지 않는다면, 장차 계발(啓發)하고 훈도(薰陶)하는 유익(有益)함을 어떻게 기대(期待)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모름지기 자신의 심복(心腹)에서 우러나온 유지(諭旨)를 체득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문서 세 지점에 관인(官印)이 날인되어 있다.

 

작품의 보존된 상태가 양호하다.

세로 56.5 cm, 가로 194 cm.

 

<2> 〈은진송씨세계(恩津宋氏世系)〉두루마리 문서:

은진송씨(恩津宋氏) 문정공(文正公) 11대손(代孫) 완빈(完彬)이 족조(族祖) 종일씨(鍾佾氏)의 도움으로 1950년 여름에 목판으로 인출(印出)하여 간행한, 《은진송씨문정공파세계략도(恩津宋氏文正公派世系略圖)》와 《은진송씨삼십삼파계도(恩津宋氏三十三派系圖)》가 수록된 두루마리 형태의 [은진송씨세계(恩津宋氏世系)] 1점이다.

 

문서 중간에 은진송씨(恩津宋氏) 문정공(文正公) 11대손(代孫) 완빈(完彬)의 지(識)가 수록되어 있다.

족보(族譜)는 위로는 조선(祖先)을 거슬러 올라서 뵐 수 있는 연원(淵源)이요, 아래로는 효도하는 자손들의 계승(繼承)이라고 하였다.

은진송씨(恩津宋氏) 가문에는 4종류의 족보가 있다고 하였다.

정해보(丁亥譜)는 출판(出板)된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근세(近世)에는 상고(上考)할 수가 없고, 임술파보(壬戌派譜)는 최근에 만들어졌으나 문정부군(文正府君) 이하(以下) 제족(諸族)이 다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찍이 매번 탄식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작년 겨울 족조(族祖) 종일씨(鍾佾氏)가 힘써 제가(諸家)들을 방문하여 그 자손록(子孫錄)을 기록한 뒤에 합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문정공(文正公) 이하(以下) 세계도(世系圖)를 안두(案頭)에 위치시켰다고 하였다. 종일씨(鍾佾氏)의 노력한 공(功)이 유구(悠久)하게 쇠퇴하지 않고 전해져서, 길이 우리 가문의 행복(幸福)으로 남을 것이라고 하였다.

 

작품의 보존된 상태가 양호하다.

세로 24.5 cm, 가로 38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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