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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寅洋擾에 從軍하고 崔益鉉 糾彈上疏로 유배되었던 조선말기 文臣 安驥泳의 당대에 그린 [초상화]와 [及第敎旨,1857], [詩卷], 다양한 [任命敎旨] 20점 등 [安驥泳 일괄 자료] 23점 일괄

병인양요에 종군하고 최익현 규탄상소로 유배되었던 조선말기 문신 안기영의 당대에 그린 [초상화]와 [급제교지,1857], [시권], 다양한 [임명교지] 20점 등 [안기영 일괄 자료] 23점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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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번호

166 (1705MOQ6LVQ)

경매일자 2017.06.2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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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寅洋擾에 從軍하고 崔益鉉 糾彈上疏로 유배되었던 조선말기 文臣 安驥泳의 당대에 그린 [초상화]와 1857년의 文科丙科 [及第敎旨], [詩卷], 1857년부터 1868년까지 받은 [任命敎旨] 20점 등 [安驥泳 일괄 자료] 23점 일괄.

 

조선 말기 문신 德甫 安驥泳의 일괄 자료로 당대에 그린 초상화와 1857년 처음 등용한 급제敎旨, 임명敎旨 등 일괄 자료이다.

 

상세 물품 명세는 다음과 같다.

 

 

1) 당상관 흉배의 채색 [安驥泳 초상화] 1점

세로 60cm, 가로 35cm

 

 

2) [安驥泳 관련 자료] 22점 일괄

- 1856년(丙辰)의 작성한 安驥泳의 [詩卷]

- 1857년(咸豐7) 幼學 安驥泳의 文科丙科 [及第敎旨]

- 1857년(咸豐7) 安驥泳의 吏曹 [差定]

- 1866년(同治5) 安驥泳을 通訓大夫行司諫院獻納에 임명하는 [敎旨]

- 1866년(同治5) 安驥泳을 通訓大夫行吏曹佐郎에 임명하는 [敎旨]

- 1866년(同治5) 安驥泳을 宣略將軍 行龍驤衛副司果에 임명하는 [敎旨]

- 1866년(同治5) 安驥泳을 禦侮將軍 行龍驤衛副司直에 임명하는 [敎旨]

- 1866년(同治5) 安驥泳을 弘文館副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弘文館副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弘文館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春秋館記注官에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通訓大夫行弘文館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春秋館記事官으로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通訓大夫行弘文館副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春秋館記注官으로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司憲府掌令에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文臣兼宣傳官에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宣略將軍 行龍驤衛副司直에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通政大夫兵曹參議에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에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安驥泳을 通政大夫兵曹參知에 임명하는 [敎旨]

- 1867년(同治6) 春秋館修撰官 安驥泳의 妻 李氏를 淑夫人으로 [追贈敎旨]

- 1868년(同治7) 通政大夫行慈山都護府使에 임명하는 [교지]

- 1868년(同治7) 兼成川鎭官慈山兵馬僉節制使慈毋中營將管城將에 임명하는 [敎旨]

 

 

 

[참고] 안기영(安驥泳)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덕보(德步). 경기도 광주 출신. 1857년(헌종 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순무영종사관(巡撫營從事官)으로 종군하여 통진에 출진하였다.

이 때 순무영천총인 양헌수(梁憲洙)가 작성하는 프랑스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전격양박도주(傳檄洋舶都主)라는 회격(回檄)의 기초를 도왔다. 1871년 남양군수를 거쳐 1873년 형조참의가 되었다.

그 해 동부승지 최익현(崔益鉉)이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비난하면서 대원군의 하야를 요구하는 격렬한 상소를 거듭 올리자, 대원군의 비호를 받아오던 그는 정언 허원식(許元栻)과 같이 최익현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당일로 유배당하였고, 그 뒤 풀려나와 승지를 지냈다.

1881년 민씨정부의 개화정책을 반대하는 신사척사상소운동이 일어나 전국유림 사이에 반민씨 기세가 감돌자, 대원군의 서자인 이재선(李載先)을 추대하기 위한 국왕폐립(國王癈立)을 음모하고 강달선(姜達善)·이철구(李哲九)·권정호(權鼎鎬) 등과 겉으로는 거의토왜(擧義討倭)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거사를 서둘렀다.

그러나 8월에 모의에 참가하였던 광주장교(廣州將校) 이풍래(李豊來)의 고변으로 체포되어 심한 국문을 받은 끝에 모반대역부도죄로 단정되어 사형당했다.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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