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0. 00. 00. 00:00:00
  •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貴重帖> 高麗太祖 王建이 親製한 뒤 唐太宗의 글씨를 集字하여 세운 塔碑의 碑文을 종이에 뜬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文 拓本帖 [古人心劃] 1點(奎章閣所藏帖보다도 本文內容이 더 完全함)

<귀중첩> 고려태조 왕건이 친제한 뒤 당태종의 글씨를 집자하여 세운 탑비의 비문을 종이에 뜬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문 탁본첩 [고인심획] 1점(규장각소장첩보다도 본문내용이 더 완전함)

확대보기 확대보기     |     돋보기 돋보기

facebook twitter kakaostory kakaotalk

시작가
25,000,000

물품번호

416 (1911SDCOGS5)

경매일자 2019.11.20 15:00:00
남은시간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碑身은 현재 斷石 4개가 남아 있을 뿐이지만, 그 이전에 을 한 것으로 碑額碑陰으로 나눠져 있으며, 碑陰에서는 규장각소장 탁본의 缺字를 많은 부분에서 보정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려시대 高僧 眞空大師 忠湛(869-940)를 기리기 위한 비문으로‚ 940(태조 23)에 고려태조가 글을 짓고崔光胤이 당태종의 글씨를 集字하였다.

현재 흥법사에는 龜趺螭首만 남아 있으며碑身은 일찍이 파손되어 斷石 4개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전하는데,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折帖本 형태로 되어 있으며, 겉표지는 목재질이다. 拓本制作年代는 미상이다.

 

表紙題; 古人心劃

本文題; <高麗國原.........>, <靈鳳山故王師眞空大師碑陰>

 

세월의 흐름을 머금고 있으나, 작품의 보존된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본문 총 15.

1의 크기: 세로 35.5 cm, 가로 18.5 cm.

 

 

[참고] 眞空大師 忠湛(869-940)

충담은 신라의 귀족출신으로 俗姓은 김씨인데출가하여 長純禪師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雲蓋禪宇에서 淨圓에게 예배하고 명산의 불교유적을 살펴보았으며‚ 904년에서 907년 사이에 귀국하였다. 이후 고려 태조는 그를 王師의 예로 극진히 대우하였다고 한다. 71세에 입적하였으며 諡號眞空이다.

 

 

원활한 경매진행을 위해 모든 질문은 '비공개문의'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