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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祖年間에 活躍하였던 京畿道 金浦 出身의 書藝家 靈光人 李至和 先生의 [大字글씨] 1點

순조연간에 활약하였던 경기도 김포 출신의 서예가 령광인 이지화 선생의 [대자글씨]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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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번호

58 (1911X7RFLZ2)

경매일자 2019.12.1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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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至和(1777 ~ ?) 先生, 조선 후기 사인(士人)이자 효자이다. 자는 거협(居協)이고, 호는 학서(學西) 군협(君協)이다.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출신지는 경기도 김포(金浦)이다. 부친은 별장(別將) 이경(李絅)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으며, 자라서는 술을 좋아하고 싸움을 일삼더니 나이 서른이 될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을 잡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805(순조 5) 증광시 1위로 합격하였다. 모친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려 모친이 한 번이라도 웃어야 그만둘 정도로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여, 1831(순조 31) 효행으로 포상을 받았다. 항상 근사록과 성리학(性理學)에 관한 책을 읽었으며, 날마다 중용(中庸)』‧『주역(周易)을 외웠다. 시는 도연명(陶淵明) 위응물(韋應物)의 충담(沖澹)함을 숭상하였으며, 필법 또한 훌륭하여 소해(小楷) 행초서(行草書)는 왕희지(王羲之) 부자(父子)에 비견되었다. 만년에 충청북도 영춘군{永春郡, 현재 단양군(丹陽郡) 영춘면(永春面)}으로 옮겨 가서 살았는데, 당시 관찰사 김정균(金鼎均)이 실행(實行)으로써 조정에 천거하고자 한 일이 있었다.

 

李至和 先生이 쓴 墨書에는 金匱玉室이라는 大字글씨가 쓰여져 있다.

 

글씨 末尾에는 春寓라고 적혀 있으며, 그 아래에는 太華山人이라고 새겨진 圖章捺印되어 있다.

 

세월의 흐름을 머금고 있으나, 작품의 보존된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세로 27.5 cm,가로 7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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