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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貴重帖> 秋史 金正喜 先生의 平生知己 彛齋 權敦仁 先生의 簡札 18枚를 비롯하여 陜衙{陜川 官衙}客 等이 쓴 簡札 7枚가 收錄되어 있는 簡札帖 [彛齋簡牘] 1點(折帖型 / 保存狀態 良好함)

<귀중첩> 추사 김정희 선생의 평생지기 이재 권돈인 선생의 간찰 18매를 비롯하여 협아{협천 관아}객 등이 쓴 간찰 7매가 수록되어 있는 간찰첩 [이재간독] 1점(절첩형 / 보존상태 량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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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번호

50 (1912CP1M47V)

경매일자 2020.01.22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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彛齋 權敦仁(1783 ~ 1859) 先生은 조선 후기~말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이다. 자는 경희(景羲)이며, 호는 이재(彛齋우랑(又畸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5대손이며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의 아들이다. 1813년 증광문과에 급제, 정자·헌납을 지냈고, 1819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1836년 병조판서로 진하겸사은사가 되어 각각 청나라에 다녀왔다. 경상도관찰사·이조판서 등을 거쳐 1842년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고, 1845년 영의정을 지냈다.

 

글씨는 신위(申緯)의 풍이 엿보이는데 노련하고 힘찬 데에 있어서는 신위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다. 김정희와 교유가 깊어 필법이 추사체와 매우 유사하며, 특히 소해(小楷)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김정희는 "글씨에 담겨있는 뜻과 생각이 뛰어났다."는 평을 하였고, 예서체 비문에 관해서는 '동국(東國)에 일찍이 없었던 신합(神合)의 경지'라는 칭찬을 받았다. 행서는 약간 온화하며, 예서는 한예(漢隸)의 졸박한 면모가 여실하다. 또 김정희는 권돈인의 필법에 대해 "중봉으로 썼으며, 예서에 있어서는 동한(東漢)의 예서 서각비인 <경군비(景君碑)><백석비(白石碑)> 두 비의 체와 법이 갖추어져 있어 신합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출처/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彛齋 權敦仁 先生이 쓴 便紙 18通 末尾에는, 安峴 樊邨 累人 退翁 退邨老人 退叟 退廬 新塘이라고 각각 쓰여져 있다.

彛齋 權敦仁 先生, 1851년 철종의 조상(祖上) 경의군(敬義君)을 진종(眞宗)으로 추존하고 그 위패를 종묘의 본전(本殿)에서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길 때 먼저 헌종을 묘사(廟社)에 모시도록 주장했다가 파직당하고 狼川으로 유배되었었는데, 流配地狼川에서 1852年頃에 쓴 簡札들이 여러 이 있다.

 

權敦仁 先生簡札 이외에도, 陜衙{陜川 官衙}雨邨老人이 쓴 簡札原衙 寧海衙中에서 보낸 答書 等包含되어 있다.

 

작품의 보존된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본문 총 25(50).

세로 36 cm, 가로 2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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