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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 11cm x 19c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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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국 | 한국 |
무애(無碍) 서돈각(徐燉珏, 1920~ 2004)은 1949년 서울대 법과대학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법과대학장 등을 지내고 1972년 이후 동국대와 경북대 총장을 맡아 교육행정가로서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학자의 최고 명예인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을 지냈다.
서 박사는 서울법대 학장으로 재직 중이던 1972년에 동국대 제7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동국대에서 2년간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동국대 법대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서 박사는 종단 내부의 갈등으로 2년 만에 동국대 총장의 자리에서 중도 하차한 후 국민대 법대의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민대에서 6년 정도 근무하다가 1979년 고향인 대구에 있는 경북대의 제8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대학의 총장은 교수, 학생, 직원을 잘 조율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자리이다.
경북대 총장의 재임 기간은 1979년 2월 21일부터 1981년 3월 6일까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였고 갑자기 사임하였는데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산이 크면 계곡이 깊듯이, 누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서 박사는 1949년 12월에 전임강사 발령을 받아 30세 이전부터 평생을 교수로 활동하면서도 정치권 등 외부세계에 발을 담그거나 기웃거리지 않았다. 그는 학자적 본분을 지키며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그리고 사회봉사에 매진하며 정년과 정년 이후까지 대학교수와 명예교수로 봉직하였다. 서 박사가 자신의 법호처럼 어느 곳에도 걸림이 없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중심축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상법학자로서 대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겸손하였다. 서 박사는 제자들에게 지식보다는 덕(德)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하였다. 그는 거액의 사재를 출연하여 무애문화재단을 만들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주위 사람들에게 인덕을 많이 베풀었다. 서 박사는 84세의 일기로 경희의료원에서 2004년 8월 24일 타계하였다. 서 박사의 사후에 지인과 제자들이 “무애 서돈각 박사 추모문집 ≪부처님과 함께≫”를 2006년 법문사에서 발간하여 그의 아름다운 삶의 흔적과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대구 출신임에도 자신의 고향에 묻히지 않고 무애(無碍)라는 법호를 준 내소사 해안 스님의 혼이 깃들어 있는 전북 변산의 유택에 잠들어 있다. 서 박사는 만나는 사람을 격의 없이 훈풍으로 대한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호인형 학자였다. 서 박사는 해방 후 학문적 태동기에 상사법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고 상법의 제정과 개정작업에 크게 기여한 한국 상법학의 태두(泰斗)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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