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최초 서양화가"김영자 투계(진품보증)(작품상태최상급)(액자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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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3월 14일 22:40:14)

경매번호 2502GAHJL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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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 크기 41x32
제조국 한국

김영자 화백의  투계 유채 크로키 6호 입니다


액자크기:71.5cm*62.5cm

작품크기:41cm*32cm


김영자(金英子.19222015.12.28)

여성 서양화가전남 목포 출생. 1935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가 우에노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유학파로귀국 후 천경자와 함께 한국 여류화단을 이끌었으며크로키 분야에서 독보적인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았다.

1953년 광주와 대전에서 첫 개인전을 연 것을 비롯해 60여회의 전국 순회 개인전을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 1984년 광주전시회를 마친 후 목포에 정착후배들을 가르쳤고예향목포인연합회 회장을 맡는 등 고향에서도 목포 예술회관을 무대로 한 토요마당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젊은 시절에는 나무를 즐겨 그렸고 노년에는 농악과 유달산삼학도를 주요 소재로 삼는 등 풍경과 풍속을 다뤘다. <농악 시리즈>, <군무>, <탈춤등으로 김영자 화풍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유화 크로키도 독특한 경지를 보여주는 화풍으로 꼽힌다.

1945년 제1회 유화개인전55회 유화개인전(서울 롯대화랑), 서울 롯대백화점 개점 축하개인전65회목포 MBC초대 개인전동양최대유화 농악 2000’(제주 아트랜드 소장), 프랑스 르 살롱전’(1988) 초대작가남농 미술대전 심사위원장(2010)을 역임했으며호남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다

목포시민의상 수상전라남도 예술문화상 수상한국예술인 총연합회 문화예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생애

김영자 화백은 대한민국 화단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그가 걸어온 길은 호남 최초 여성화가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근대 서양화단의 역사로 통한다여성화가가 드물던 시절 일본 동경 우에노 미술전문학교에서 공부근대미술을 국내에 소개했다한국 최초 여성화가인 나혜석 선생에 이어 동경 우에노 미술학교에 입학한 두번째 한국인이라는 이력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고교생으로서 1938년 화가들의 등용문이었던 17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작품 반찬의 재료로 입선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당시 출품자들이 호남을 대표하는 화가인 남농 허건(동양화), 박수근(서양화)씨 등 쟁쟁한 인물들이다.

목포 갑부이자 목포시의원을 지낸 김용문 선생의 외동딸이었던 김 화백은 지난 1943년 일본 동경 우에노 미술학교에 입학했다자녀 출산 때문에 중퇴한 뒤 귀국길에 올랐으나남편이 한국전쟁 때 숨지면서 순탄치 않은 삶을 살게 된다김 화백은 이때부터 전국을 떠돌면서 무려 60여 차례 전시회를 여는 등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붓을 잡았다그 덕분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풍경과 풍속화를 주로 그렸던 그는 70, 80년 대 서양화를 배웠지만 서양을 따르지 않고 한국적인 것을 찾겠다는 평소 다짐을 실천에 옮겼다장터와 산사 등 토속적인 소재를 찾아 헤맸다김영자를 대변하는 <농악 시리즈등 풍속화는 이런 고민의 결실이다.

그는 오지호강용운양수아배동신 선생 등 광주전남지역을 대표하는 작고 작가들과 교분이 깊었다이들의 사랑방은 광주 수기동에 있던 미술연구소로 광주에서 처음으로 생긴 미술학원이었다김 화백과 천경자 화백은 경쟁자이자 동지였다김 화백 보다 두 살 적은 천 화백은 김영자 화백의 전시회장을 방문한 뒤 언니는 이쁘니까 그림이 잘 팔리겠네?”라는 뼈있는(?) 농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김영자 화풍을 이룬 대가였지만 김 화백의 인생은 곡절 그 자체였다남편 박문석씨가 한국전쟁 때 숨진 뒤 또 한 사람과 인연이 됐지만 그는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 화백의 예술을 귀하게 여겼다. 1977년 제주 KAL호텔에서 전시 중인 김 화백의 그림을 때마침 그곳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이 본 게 인연이 됐다박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김 화백을 종종 찾았고 자연스럽게 후견인이 됐다.

김 화백은 1980년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목포로 귀향한 뒤 화단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했다유달산 꽃축제 대회장을 8년 동안 맡았고 예향목포인연합회장을 지냈다후진양성을 위한 김영자 장학회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김 화백은 지난 2013년에는 자신이 아끼던 작품들을 목포에 기증했다전남여성 플라자에 있는 [김영자 화백 미술기념관]은 이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는 1922년생으로 여느 화가 같으면 노화 때문에 시력이 떨어져 작업을 할 수 없을 초고령임에도 올 1월까지도 목포 호텔현대에 있는 현대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이 전시에서는 최근 20여 년 동안 유화 크로키(croquis) 작업을 선보였다결국이 전시는 생전 마지막 전시로 남게 됐다.

그는 2014년 말 한 인터뷰에서 “‘예술 때문에 자식도 버린 모성애 없고 독한 년이라 욕 먹으면서도 그림이 싫은 적은 없었다며 예술가로서 작업에 고상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겸손해했다.

작품】 <농악 시리즈> <군무> <탈춤> <장터> <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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